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요한 12,6)
저마다의 관심사에 따라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자고 성인도 말을 할 수 있고 사기꾼도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똑같지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한 사람은 정말 가난한 사람을 향한 지극한 동정심에서 그 말을 할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선한 이미지를 심어서 나중에 크게 한 탕 하려고 그런 말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를 도울 수도 있었다고 하는 유다의 말을 듣고 하는 요한 복음 사가의 해석은 유다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돈을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이 언뜻 외적으로 선해 보이는 일을 할 때에 올바로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늑대도 필요에 의해서 양의 탈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교묘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만 결국에는 거짓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올바른 영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을 분별해 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선동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도 군중들은 권위있는 이들에게 선동을 당해서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악을 쓰곤 했지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솔직히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속에는 전혀 다른 것을 감추고도 사람들이 우리를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기 이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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