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장작에는 불이 붙지 않습니다. 불은 불꽃만을 갖다댄다고 붙는 것이 아니라 사전 준비도 필요합니다. 장작을 말리고 불쏘시개를 구하고 첫 불을 붙인 후에는 두 손으로 감싸 보호하기도 하고 불이 약할 때에는 바람을 불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소중히 다룬 불이 비로소 장작에 본격적으로 옮겨 붙으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교회의 현재를 진단할 때에 핵심은 성령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됩니다. 성령께서는 불과 같아서 준비된 장작을 통해서 타오르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장작이지요. 하지만 그 장작이 타오르기 위해서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 불쏘시개가 잘 타오르도록 보듬어주는 바람막이와 힘을 실어주는 바람이 필요한 법입니다.
헌데 지금의 교회는 불쏘시개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에 따라 장작은 날로 세상에 젖어만 갑니다. 거룩함이 사라져가는 곳에는 세속의 물이 끼얹어져 사람들이 더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가 세속의 물에 잠겨버리고 마는 날에는 마침내 장작으로서의 역할이 의미없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때로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장작이 던져지기도 합니다. 그 불이 어찌나 뜨거운지 불쏘시개도 필요 없이 다른 장작을 말리고 불을 지피기도 하지요. 하느님의 손길은 위대하니 충분히 이를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는 통상적인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각별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기대만을 안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따스한 불길 가까이에 다가서서 스스로를 말리면서 준비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불쏘시개로 쓰실 준비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를 산산이 갈라 하느님의 불쏘시개가 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한순간의 불을 지피고 육신의 생명을 다하게 되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타오르는 열기는 하느님과 더불어 영원 속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 열기는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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