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빵의 기적을 떠올릴 때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먹는 빵을 기적적으로 많게 만드셨을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신은 그 방법을 찾느라 그 안에 갇혀 버리고 말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모든 기적들은 천상의 사정과 결부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천상적인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중의 입에 들어간 빵은 그들의 배로 들어가서 결국 뒷간으로 모두 나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보고 배우라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배불리는 천상의 양식에 대한 교훈이었습니다. 하늘의 빵은, 즉 말씀과 그 은총은 작은 봉헌을 통해서 시작되고 감사를 통해서 풍부해지며 사람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12개의 소쿠리가 남는다는 것이 핵심이었지요.
말씀의 봉사자들은 소쿠리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앉았고 각 무리마다 소쿠리가 전해 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요. 그렇게 사람들을 잔뜩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복음 선포자, 말씀의 진실한 봉사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먹일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준비된 사도들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날이 맛있는 양식을 먹이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이 하느님 가까이에 머물러 있고 그분을 통해서 매일의 양식을 얻게 되면 그는 또다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영적 양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영적으로 먹여 살리게 되지요.
핵심은 봉헌과 감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내어 놓을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루에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는 시간을 성경을 읽는 데에 바치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어느샌가 엄청난 빵으로 변해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직장을 구하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헌신하는 그 노력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기울인다면 아마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에게로 돌아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첫 봉헌이 없기에 그들은 얻지 못합니다.
또다른 핵심은 감사입니다. 사람들은 도무지 감사드릴 줄을 모릅니다. 우리가 거저 얻은 생명에 감사할 줄 모르고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 축복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을 돌려 드릴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감사할 줄 알았더라면 마음에 기쁨이 넘쳐났을 것이고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내어 주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거뜬히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됩니다. 첫 봉헌은 한 소쿠리도 되지 않는 것이었는데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사람들에게 전해질 열두 광주리의 빵이 남게 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여 땅에 묻히는 씨앗이 되면 그 열매가 엄청나게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는 빵은 열두 사도들이라는 광주리를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광주리의 빵은 지금의 교회가 되어 여전히 수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