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죽었습니까? 아니요 죽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도 살아 있으며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고 또 자신의 영적 자녀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아브라함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보고 기뻐했고, 그보다 훨씬 전에는 광야에서 지상의 생을 마쳤지만 자신의 아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함께 기뻐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이미 약속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이들은 비록 육신의 생명이 다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첫번째 부활이 있을 것이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지상의 삶을 바탕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상급을 받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게 되지요. 그리고 두번째 부활을 겪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영원한 죽음에 처할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 5,28-29)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나머지 죽은 이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행복하고 또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이들에 대해서는 두 번째 죽음이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제가 되어, 그분과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 (묵시 20,4-6)
죽지 않은 것을 두고 죽었다고 간주를 하고 이야기를 하니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이해가 성립되지를 못합니다. 모든 죽은 이가 살아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예수님의 말을 들으면 모든 말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로서는 예수님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기인에 불과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요한 8,52-53)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이해’가 왜 그렇게도 실제적으로 와 닿기가 힘들까요? 사람들의 믿음은 너무나 나약하고 세상의 유혹은 너무나 강합니다. 그래서 지금 의지하는 세상 것들을 포기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셈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