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활 미사를 마치고 다시 고해소에 들어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수많은 이들이 고해소를 찾더군요. 그래서 한 분 한 분 정성껏 성사를 드렸습니다. 제 강론은 그리 듣기 쉬운 편은 아닙니다. 가정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불의들을 모조리 꺼내어 놓고 사람들이 생각하게끔 하니까요.
술을 과하게 먹거나 아내를 때리거나 불륜을 생각하고 있는 가장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반성하게 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안지 못하고 윽박지르고 통제하려고만 하는 어머니나, 마음은 버려두고 외적 미모 가꾸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여자아이들도 저의 강론 주제가 됩니다. 물론 잔돈푼을 슬쩍하고 부모님에게 반항하는 아이들도 강론 대상이지요.
하지만 그 뒤에는 고해소의 문을 활짝 열어둡니다. 와서 하느님과 화해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어법 찾아옵니다. 제가 한 강론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된 이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번의 고해가 사람을 바꾸어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첫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선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과 노력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 닿게 되니까요. 아예 시작부터 자신은 안된다고 생각하고 주저 앉아 세상의 욕구와 어울려 즐기기 시작하면 그는 갈수록 뒤로 처지는 것입니다.
삶에는 짜여진 메뉴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저마다의 자리에서 성실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지점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박사가 되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박사가 되어야 하고, 가정 주부가 되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가정 주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잃고 나면 모든 것이 바스러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게 되지요.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하느님 없이는 흩날리는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바람으로 오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려는 마음이었지요. 이렇게 저의 볼리비아에서 마지막 부활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들이지요.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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