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떻게 하면 주님을 참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아직 만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즉, 이미 마주하고 있음을, 굳이 따로 만날 필요가 없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따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의 근본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으로서 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그래서 이를 아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이 있는 곳이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성체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미사, 그리고 예수님이 집전하시는 모든 성사’ - 전례
‘둘이나 셋 이상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 교회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 - 기도
‘가장 작은 이를 향한 헌신’ - 선행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일종의 ‘형식’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결국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만날 때에도 준비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즉 전례에 참여할 때에 그 전례의 외적 형식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실한 마음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하지요.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온갖 탐욕과 명예욕과 권력욕에 시달린다면 그 교회의 외적 껍데기를 통해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생활을 하려면 내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교회 가족들을 대해야 합니다. 기도 역시도 형식의 굴레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도는 ‘양’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한 봉사도 ‘과시욕’의 일종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선행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을 어떻게 하면 참으로 만나게 될까요? 먼저는 우리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 외아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보고 듣고 배워서 하느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기적을 바라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신기한 체험’을 기다립니다. 뭔가 번개가 번쩍이던가, 내가 탈혼 상태에 빠지든가, 기이한 현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기를 기다리다가 엉뚱한 길에 빠져든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호기심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단 종교들은 그런 호기심거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합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만나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과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교회가 정설로 가르치는 것을 배워 알고 서서히 익혀 나가면 결국 예수님과 만나게 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저는 그것 말고 다른 더 쉽고 빠른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누구든지 바로 하느님을 알게 되는 은총을 얻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학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영,수를 충실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요행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견디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충실히 제 갈길을 가서 합당한 자격을 통해서 그것을 누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아직 만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즉, 이미 마주하고 있음을, 굳이 따로 만날 필요가 없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따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의 근본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으로서 약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그래서 이를 아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이 있는 곳이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성체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미사, 그리고 예수님이 집전하시는 모든 성사’ - 전례
‘둘이나 셋 이상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 교회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 - 기도
‘가장 작은 이를 향한 헌신’ - 선행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일종의 ‘형식’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결국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만날 때에도 준비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즉 전례에 참여할 때에 그 전례의 외적 형식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실한 마음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어야 하지요.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온갖 탐욕과 명예욕과 권력욕에 시달린다면 그 교회의 외적 껍데기를 통해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생활을 하려면 내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교회 가족들을 대해야 합니다. 기도 역시도 형식의 굴레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도는 ‘양’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한 봉사도 ‘과시욕’의 일종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선행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을 어떻게 하면 참으로 만나게 될까요? 먼저는 우리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 외아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보고 듣고 배워서 하느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기적을 바라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신기한 체험’을 기다립니다. 뭔가 번개가 번쩍이던가, 내가 탈혼 상태에 빠지든가, 기이한 현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기를 기다리다가 엉뚱한 길에 빠져든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호기심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단 종교들은 그런 호기심거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합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만나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과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교회가 정설로 가르치는 것을 배워 알고 서서히 익혀 나가면 결국 예수님과 만나게 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저는 그것 말고 다른 더 쉽고 빠른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누구든지 바로 하느님을 알게 되는 은총을 얻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학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영,수를 충실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요행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견디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충실히 제 갈길을 가서 합당한 자격을 통해서 그것을 누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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