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꼼짝 못할 곤경에 빠졌소. 그렇게 하면 그것은 나에게 죽음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오.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편이 더 낫소.” (다니 13,22-23)
첫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수산나가 왜 곤경에 빠지게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산나가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수산나의 경우에는 ‘미모’였지요. 수산나는 그것을 청한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세상적인 매력이나 재능을 가진 이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축복일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영적으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유혹에 시달려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재능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적인 가치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겉으로 이뻐지기보다 내적으로 이뻐지기를 원해야 하고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어떤 재주보다 내적으로 하느님에게 잠겨들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보통이고 우리는 늘 유혹에 시달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유혹과 이겨냄을 통해서 비로소 내적인 힘이 길러지는 것이지요.
수산나처럼 때로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의 재능이 세상의 이목을 끌고 그들이 어두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다가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이용하고 공격하고 무너뜨리고 망쳐버리기 위한 목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교묘히 숨기고 다가오지요.
이때에 우리는 수산나의 독백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곤경 속에서도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죄를 짓는 것보다 차라리 순수한 마음으로 곤경 속에서 고난을 감내하는 것이 더 나은 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쉽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산나는 벼랑 끝까지 몰려갑니다. 하지만 결국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자의 도움을 받아 곤경에서 벗어나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똑같은 유형의 도움을 받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곤경 속에서 이 세상의 생이 마감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느님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주인이시니까요.
수산나 이야기에서 마지막 교훈은 의로운 이는 반드시 그에게 약속된 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영원 안에서 더욱 빛이 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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