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요한 8,37)
요한의 복음은 정말 심도가 깊습니다. 이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아니 적어도 요한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수수께끼 같은 표현들 뿐이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의 말이 자리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이해를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으려고 결심하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의 의지적 선택이 하느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실천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아무리 누군가 옳은 말을 하여도 기분이 나쁘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은 내가 그를 증오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일들을 자주 체험하고 실천하곤 합니다. 이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의 영역을 떠나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이성으로 일을 분별한다면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지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지요.
즉,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의지가 바뀌면 그 즉시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회개는 번개가 치듯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단순한 의지의 변화를 말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과정이지요. 그러나 회개가 힘든 것은 그 회개를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시 유혹이 다가오고 우리는 예전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지요. 즉 하느님과 상관없이 살던 그때로, 나의 의지를 더욱 중요하게 내세우던 그때로 너무나 쉽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내면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이 됩니다. 그 사랑의 초대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들 안에는 빛이 존재하지 못하고 어둠이 가득하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그분을 죽이려고 듭니다. 예수님을 간직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박해를 각오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신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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